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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소금 없는 정치, 혹은 소금에 절인 정치
주권자의 의견은 민주주의의 미각이다.
기사입력: 2026/01/15 [10:32]   wide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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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근

 

▲     ©강효근

인간의 몸에서 소금은 눈에 띄지 않지만, 단 한순간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조정자다. 소금이 부족하면 신경은 혼란에 빠지고, 근육은 제 기능을 잃는다. 반대로 소금이 과잉되면 혈관은 망가지고 생명은 위협받는다. 소금의 본질은 ‘지배’가 아니라 ‘조율’이다.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다.

 

정치도 그렇다.

 

현대 대리민주주의는 종종 두 극단 사이를 오간다. 하나는 모든 정책 결정에 매번 주권자의 의견을 묻겠다는 환상이다. 이는 민주주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숙의 없는 상시적 여론 추종은 정책을 단기 감정의 파도에 맡기고, 국정의 일관성을 붕괴시킨다. 이는 소금 과잉과 같다. 음식은 짜고, 결국 아무도 먹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더 위험하다. 주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정—지역 통폐합, 행정구역 개편, 공공기관 이전—앞에서조차 주민의 의견을 묻지 않는 정치다. 이는 효율과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주권을 결핍시킨 정치다. 소금이 빠진 음식처럼, 정치의 맛은 사라지고 민주주의는 생명력을 잃는다.

 

정치가 인류 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은 명확하다. 정치는 소금이어야 한다.

주권자의 의견을 지배하지도, 제거하지도 말고,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양으로 작동하는 조정자여야 한다.

 

그렇다면 주권자의 의견은 언제, 어떻게 반영되어야 하는가?

 

첫째, 일상 행정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바꾸는 결정에는 반드시 주권자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주민의 공간, 정체성, 생존 조건을 바꾸는 사안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며, 정치적 문제는 주권으로부터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빠진 정치는 효율적일 수는 있어도 정당하지 않다.

 

둘째, 주권자의 의견은 즉각적 찬반이 아니라 숙의의 형태로 조직되어야 한다. 정치가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의 온도와 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무작위 시민으로 구성된 숙의 기구, 충분한 정보 제공, 상반된 관점의 공정한 제시 이 과정이 없다면 의견 수렴은 여론 소비에 그친다.

 

셋째, 정치인은 주권자의 의견을 ‘장식품’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공청회 한 번, 설문조사 몇 줄로 민주적 절차를 다 했다고 말하는 순간, 정치는 소금을 뿌린 척만 하는 음식이 된다. 먹는 이는 속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병은 정치가 주권이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보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선거가 다가오면 말이 바뀌고, 임기가 시작되면 침묵하는 정치. 주민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위쪽 권력 앞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정치. 이는 조정자가 아니라 자기보존 본능에 지배된 생물학적 행위에 가깝다.

 

민주주의에서 주권자가 가진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한 권한은 징벌로서의 선거다.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평가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치, 주민의 삶을 바꾸는 결정 앞에서 주민을 배제한 정치, 책임을 위로 미루고 성과만 아래로 요구한 정치는 다음 임기라는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

 

정치인을 처벌하자는 말이 아니다. 정치를 정상으로 되돌리자는 말이다. 소금이 제 역할을 못하면 요리사는 양을 바꾼다. 민주주의에서 요리사는 주권자다.

 

주권자의 의견은 소란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미각이다.

이 미각이 마비된 사회에서 정치는 결국 썩는다.

 

우리는 더 짜지도, 더 싱겁지도 않은 정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를 행사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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