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남겼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문명론자들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만약 사람들이 한곳에 과도하게 밀집해 살지 않았다면, 피해는 지금보다 훨씬 적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자연의 힘은 피할 수 없지만, 그 피해를 키운 것은 인간이 선택한 '집중'이라는 문명의 방식이라는 해석이다.
집중은 효율을 높인다. 행정도, 경제도, 산업도 집중될수록 성장의 속도는 빨라진다. 그러나 집중은 언제나 분배의 정의와 충돌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부와 인구가 한곳에 몰린 도시일수록 집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지역 간 격차는 더욱 심화된다. 효율은 높아지지만 균형은 무너진다.
필자가 전남·광주 통합을 무조건 낙관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통합은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주변 지역이 소외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그 우려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전남 국립의과대학 논의 과정에서 목포와 순천이 의대를 나누는 방안이 제기되더니, 이제는 대학병원마저 순천에 배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남 서남권은 오래전부터 대학병원 접근성이 전국에서도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지적되어 왔다.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대학병원이 가장 먼저 필요한 곳은 목포를 중심으로 한 서남권이다. 이것이 의료 공공성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분배의 원칙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보다 정치적 유불리가 앞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구가 많고 정치적 영향력이 큰 지역을 우선하는 결정이라면 그것은 행정의 판단이 아니라 정치의 계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통합시장이 된 민형배의 일방적인 독재 정치인가? 아니면 이를 막아내지 못하는 목포 정치권의 역량 부족인가?
사실 이 질문은 오늘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의과대학 문제를 순천과 나누는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목포 정치권은 시민들에게 명확한 비전도, 설득력 있는 대응도 보여주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목포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지역의 협상력 역시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며칠 전 산을 오르다 우연히 잘려 나간 나무의 나이테를 바라본 적이 있다. 나이테는 처음에는 넓고 선명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가늘어지고 희미해진다. 마지막에는 나이테가 있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옅어진다.
문득 그 나이테가 오늘의 목포 정치권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지역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던 정치력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졌고, 지금은 지역의 중대한 현안 앞에서도 시민들이 그 역할을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정치는 결국 힘의 경쟁이지만, 그 힘은 권력 자체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지켜내는 데 사용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목포가 필요한 것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다면, 다른 지역이 그것을 가져가는 현실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문제는 민형배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목포의 권익을 지켜낼 정치적 역량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무의 나이테는 다시 굵어질 수 없다. 그러나 정치의 나이테는 시민의 선택과 정치인의 각성으로 얼마든지 다시 선명해질 수 있다.
지금 목포에 필요한 것은 상대를 비난하는 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생명과 지역의 미래를 지켜낼 수 있는 강한 협상력과 책임 있는 정치이다. 그것이야말로 지역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목포 시민들이 정치권에 부여한 가장 중요한 책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