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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순사건 희생자 손해배상 청구를 맡은 서동용 변호사 ©강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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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당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재판 없이 총살당한 고(故) 박찬길 검사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은 여순사건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국가 책임을 묻기 위한 법적 절차로, 서동용 변호사(전 국회의원)가 법률대리인을 맡아 진행한다.
서동용 변호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4월 10일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고 박찬길 검사와 그의 부친 박인서 씨를 여순사건 희생자로 공식 결정했다. 사건 발생 78년 만에 국가가 희생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황해도에서 월남한 독실한 기독교 가정 출신인 박찬길 검사는 1947년부터 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석검사로 재직했다. 해방 직후 일부 경찰이 친일 전력을 덮기 위해 좌익 척결을 명분으로 민간인을 과도하게 처벌하자, 박 검사는 증거가 부족한 사건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권한을 남용한 경찰을 법에 따라 수사하는 등 검사의 직무를 수행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산에서 무허가로 땔감을 채취하던 한 남성이 단속을 피하려다 경찰의 총격을 받아 제압된 뒤에도 사살된 사건이 있었다. 박 검사는 총격을 가한 경찰관을 살인죄로 기소하고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순천경찰은 박 검사를 '붉은 개'라는 뜻의 '적구(赤狗) 검사'라고 상부에 보고하는 등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1948년 여순사건이 발발하자 박 검사는 부친과 함께 봉기군을 피해 지인의 집 다락방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23일 진압군이 순천을 탈환한 직후 경찰에 체포됐다.
부친 박인서 씨는 순천경찰서에서 고문을 받던 중 숨졌고, 박 검사는 인민재판장을 맡았다는 허위 혐의를 뒤집어쓴 채 정식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순천북초등학교 교정에서 총살됐다.
하지만 이듬해인 1949년 법무부 조사와 국회 기록 등을 통해 박 검사가 인민재판에 관여한 사실이 없고, 순천이 진압군에 의해 탈환된 이후에야 은신처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찰의 혐의가 허위였음이 밝혀졌다.
당시 합동수사본부는 박 검사의 총살을 주도한 인물로 제8관구 경찰청(현 전남경찰청) 부청장 최천을 지목했지만, 경찰 조직의 집단 반발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천은 이후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럼에도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나 책임 인정은 없었으며, 정부가 올해 희생자로 공식 결정한 것이 처음이다.
박 검사의 차남인 박경진 목사는 "국가가 불법 학살을 인정한 것은 늦었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며 "가족들이 겪은 통한과 공황장애 등 평생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시는 이러한 국가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말했다.
법률대리인인 서동용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단순한 손해배상 청구가 아니라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희생된 여순사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의 법적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절차"라며 "현직 검사마저 '빨갱이'라는 허위 낙인 속에 재판도 받지 못한 채 희생된 사실은 대한민국 법치주의 역사에서도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이 수십 년 동안 감내해야 했던 정신적 고통은 시간만으로 치유될 수 없다"며 "국가의 진정성 있는 사죄와 정당한 배상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