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권은 오랫동안 지방소멸을 걱정해 왔다. 지방에 기업을 유치하고,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산업단지를 조성하면 지방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이어진 수많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방은 계속 쇠퇴하고 있다.
지방 대학은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청년들은 서울로 떠나고, 일부 농어촌 지역은 소멸 위험 단계에 들어섰다. 이쯤 되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정말 지방이 문제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지방소멸을 지방의 문제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일 수 있다. 지방소멸의 원인은 지방의 부족함이 아니라 서울의 과도한 독점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지방소멸의 원인을 주로 일자리 부족에서 찾는다. 그래서 지방에 공장을 짓고 기업을 유치하면 청년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이 서울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히 직장 때문이 아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정치 수도이자 경제 수도이며, 교육 수도이자 문화 수도이다. 최고의 대학과 대기업 본사, 주요 언론사와 금융기관, 문화산업과 소비시장이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심지어 결혼과 인맥 형성의 기회까지 서울에 몰려 있다.
무엇보다 서울은 대한민국 최대의 자산 시장이다. 서울 아파트는 더 이상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서울 부동산은 노동소득보다 더 강력한 자산 증식 수단으로 인식된다. 지방에 좋은 직장이 생겨도 서울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오늘날 청년들은 지방 발령을 기피한다. 과거에는 지방 근무가 승진을 위한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퇴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는 임금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다. 서울에 남아야 더 많은 사회적 자본과 자산 형성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지방소멸은 경제 문제가 아니다. 권력과 자본, 교육과 문화가 특정 공간에 독점된 결과다.
독일은 종종 지방균형 발전의 성공 사례로 언급된다. 그러나 독일의 성공은 지방 지원 정책 때문이 아니었다. 독일은 애초에 특정 도시가 국가 전체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구조를 설계했다.
수도인 베를린은 정치 중심지에 불과하다. 금융은 프랑크푸르트, 첨단산업은 뮌헨, 항만물류는 함부르크, 미디어는 쾰른이 담당한다. 독일 청년들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베를린로 갈 필요가 없다.
반면 대한민국은 서울 하나가 정치·경제·교육·문화·언론의 중심 역할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초집중 구조다.
생각해보면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갔다. 성균관이 있었고, 중앙 관청이 있었고, 출세의 길이 한양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서울로 향하는 이유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주요 대학, 대기업 본사, 언론사, 중앙정부 기관이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지만 공간 구조만큼은 여전히 조선의 한양 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따라서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지방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방을 살리려는 접근에서 벗어나 서울의 독점을 해체하는 접근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가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국회와 행정부 일부 이전 정도가 아니라 사법·행정·금융 권력을 전국으로 나누어 배치해야 한다. 교육 권력도 분산해야 한다. 특정 분야에서는 지방 대학이 서울의 명문대보다 더 높은 위상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전략적 육성이 필요하다. 기업 역시 생산공장만 지방에 두는 것이 아니라 본사와 연구개발 기능까지 함께 이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서울 부동산이 곧 자산 증식의 상징이 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어떤 지방정책도 성공하기 어렵다. 지방소멸은 인구 감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권력 구조의 문제이며, 국가 운영 방식의 문제다.
지방이 사라지는 이유는 지방이 약해서가 아니다. 서울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방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묻기보다 서울의 독점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지방소멸의 해법은 지방에 있지 않다. 서울에 있다.